2009-05-10

.

들어보시겠어요? Would you like to listen?
Deuleobosigesseoyo? Would you like to listen?


대학로의 필리핀 시장 커뮤니티 프로젝트에 대한 제안을 받고 처음 우리는 그곳에 대한 2차적인 자료 수집과 매주 일요일마다 필리핀 시장에 출근하는 1차적인 접근법을 결정하였다. 직접 경험해보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그곳 안에서의 시간을 쌓아나갈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조금 더 가까이서 아무런 장막 없이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 고대하였다. 이러한 1차 접근법에 대한 ps.press의 태도는 특정한 커뮤니티, 즉 집합체로써 큰 덩어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민감한 시선을 바탕으로 보다 더 개개인에게 근접하여 뭔가 포착할 수 있는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본적인 감성에 기반한다. 묵직한 단어와 표현들이 난무하는 생산물이 아니라 거칠고 덜 다듬어져 설사 그것들이 세련되지 못한 표현을 만들어 낸다 하더라도 조금 더 다가가보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내적으로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들은 생각을 움직이게 하고 입을 열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어떤 인위적인 각색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서의 시간과 경험으로 형성된 ps.press의 개인적인 서사이다. 서사가 가지는 개별성은 우리에게 대학로의 필리핀 시장이 가지고 있는 개별자들의 목소리를 보다 더 낯설고 생경하게 들려준다. 다시 말해서 대학로 필리핀 시장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면서 그 행위(시간성을 내포한)야 말로 ps.press의 발언에 물리적이고도 정신적인 동기를 만들어 주는 지지가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녹음된 사운드들에는 어떤 개개인들과의 짧은 대화가 담겨져 있으며, 이것이 스쳐 지나가게 둔 사소한 것들을 불러 세우고 그것들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만들어 주리라 조금은 섣불리 기대한다.


처음 우리가 녹음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그 곳에서의 시간과 경험을 쌍아 나가려는 선택이자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기록의 수단이었다. 또한 이러한 기록물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듣기’는 우리 내적으로 더불어 외적으로 작업에 대한 근거를 찾는 행위가 된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면에서 이미지를 제거한 후 남은 소리, 즉 영상 없는 영상은 시각적인 인식에서 출발한 우리의 작업에 대안적 접근의 출구를 열어준다. 생경한 말들, 어색한 눈빛들을 주고받는 우리와 필리핀 시장 사이의 관계에서 그 안에 속할 수 없는 지독한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고 또한 고수할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발견하였다. 이러한 관찰자적 시각은 카메라, 즉 타인을 바라보는 눈을 도구로 가지는 영화적 성격에 기반한다. 영화는 카메라 렌즈에 포착되는 사람의 뒤를 쫓고 그의 혹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모두 관음증적 습관에 시달리고 우리가 작업을 하면서 느낀 일종의 작가로서의 윤리적 질문도 이와 같은 선상에 있다. 마치 대학로 필리핀 시장에 관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처럼 일요일의 시간들이 쌓여갔고, 우리가 채집한 소리들은 그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되어주었다.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이것은 사전에 한 단어로 명시되기 보다는 문화적 관용어구로 쓰이는 용어로 영화나 영상 속에서 시각적 이미지와 동시성을 가지고 결합되는 청각적 요소들을 지시한다. 원래 이미지와 결합되었던 이러한 사운드들을 영상에서 분리하고 그 소리만을 독자적으로 듣게 하는 것은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감각들 사이에 있는 시간을 발견하고자 함이다. 이미지와의 동시성에서 해방되어 연주되는 소리들은 감각들의 시간차 혹은 상상력을 유발하여 이야기의 독해들을 해체한다. 또한 이 과정 속에서 하루하루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녹음은 우리 작업의 구조 사이에 개별적 이야기들의 생생함을 자리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모여진 14개의 트랙에 담겨진 사소하고도 하찮은 이야기들은 우리가 시장에서 듣고자 했던 내용을 담은 인터뷰도 있지만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람들의 흥정하는 소리, 거리의 차가 지나가는 소음들이 한데 섞인 내러티브 조차 없는 트랙은 풍경으로 다가오지만 풍경 그 자체로만은 읽힐 수 없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실재가 아닌 실제하는 시간을 제시하는 작업은 우리에게 들려진, 듣고 싶었던 것들을 다시 들려준다. 이 행위는 그 시간들은 개별성에 접근하고자 하는 작업의 첫 단계가 되는 타인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자각하게 한다. 우리는 그저 기록에서 출발했던 이 소리들을 다시 들으며 우리 자신이 타인에게 질문을 하는 순간 의도적이지 않게 바뀌는 자세들에 주목하게 되었다. 타인을 향한 귀가 열리는 순간을 맞닥뜨린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주 조금 타인을 향한 귀가 열린 그 순간,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다는 소망, 다시 발견되는 타인에 대한 소흘함에 대한 자각, 놓쳤던 이야기들에 대한 아쉬움으로부터 대화가 타인에게 접근하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점을 찾고자 한다.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의 발견하고, 목소리들의 개별성을 끄집어 내는 것, 다시 말해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에 좀 더 충실한, 좀 더 말하게 하고 듣는 작업들이 필요함을 느낀다.


*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 오브 필리핀 마켓’ 과정은 듣는 행위에 대한 재고찰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작업을 일단락 지으며 진정으로 듣는 귀를 가진 작업을 꿈꾸며 ‘청취단 Listening Company(가제)’라는 새로운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