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19

리스닝 컴퍼니 분쟁제기 제 5 호



분쟁제기인의 대리인이 모일 모시 대안공간 풀 지하 전시장에 나타나 몇 날 며칠이고 소송을 제기한다. 리스닝 컴퍼니는 전시 기간 내내 분쟁제기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열어둔다. 이 소송에 누구라도 방청객, 배심원, 대리인으로 자유롭게 배석할 수 있으며, 리스닝 컴퍼니는 이들에게 또 다른 분쟁 제기가 가능하도록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분쟁은 ‘듣기’의 운동성을 혼란 속에 빠트려 이들이 선형적 시간의 흐름에서 튕겨져 나와 예측할 수 없는 다른 질문을 향해 가도록 만들 것이다. 이 모든 분쟁은 소리로 기록되고 재생되고 또 재기록된다.


“…… 뚜벅, 뚜벅.
지금 이 방에 들어선 저는 분쟁을 제기하는 사건당사자의 대리인입니다. 제 이야기를 하러 나온 것이 아니니, 목소리 없는 목소리라고 할 수 있겠죠.
제 고객께서는 모일 모시 리스닝 컴퍼니에 의뢰하여 듣기 서비스를 제공받았으나 불만족스러워 다음과 같이 듣기말하기 분쟁연극을 신청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리스닝 컴퍼니의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리스닝 컴퍼니에서 제공하는 듣기는, 그녀가 기대한 것과는 달랐습니다. 어떤 면으로나마, 명료함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혼란만을 가중시켰다는 군요. ……
……리스닝 컴퍼니는, 더 잘 듣기 위해, 자발적으로, 워크숍들을 만들어, 듣기에 대해 탐구했다고 하던데, 그녀는 그것이 별 효과가 있었는지, 의심이 든다고 하더군요. 한 서너 군데 찾아가 듣기도 하고, 연극치료사를 선생님으로 청해서 수 차례 듣기 연습을 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도대체 그 시간 동안, 무엇을 배운 겁니까?
리스닝 컴퍼니 말로는, 심리 치료에 쓰이는 강도의 비폭력적으로 대화하는 방법이라던가, 온전히 듣는 자의 태도를 배우고 몸에 익히는 시간이었다던데, 그것이, 과연 우리의 일상에서 실천이 가능한지를, 장담할 수 있나요? 혹은 그것이 정말 존재하는 대화인가요?
……이런 말들이 말하거나, 듣는 당신을 편하게 합니까? 그렇듯 하다가도, 아니죠.
이 말들을 하다 보면 대화의 끝에 이르러서는 상대방을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며, 가르치게 되지요, 원하지 않아도 말이에요.
이런 말들 대신에 그 심리치료사가 대안으로 제시한 말들이 있습니다.
……완벽히 들어야 하는 상황들이 분명 있어요, 있고 말고요, 그렇지만, 완벽히 치료사로서의 입장을 취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지요. 이를테면, 내 자신의 마음이 불안정하거나, 상처가 나있는 상태라면, 아무리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들어주는 사람의 상황도, 그 말이 자신에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매 순간 다르니까요. 이것이 리스닝 컴퍼니가 듣기 연습이라고 하는 행위들로부터, 서비스를 도출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착오가 아니겠습니까? ……
……당신은 그녀에게 한 번도 묻지 않았군요. 그녀의 목소리를 찾으려고 해본 적이 있습니까, 들으려는 말들을? 이 질문에 리스닝 컴퍼니는 할 말이 있을 테죠. 목소리를 찾으려 어디어디를 갔습니까?
여기저기 다니긴 했어요. 목소리를 찾아주기 위해서 초대한 분들은 카톨릭 필리핀 공동체에 마를린 림씨, 버마행동에 투라씨, 연극인들도 있군요. 그런데 생소하네요, 줌머족이라고요? ……
……다수의 듣기, “듣는다고 해서 무엇을 들을 수 있는데?”
그녀는, 개개인은 괜찮을지 모르나, 듣는 이가 집단으로 모여있게 되면, 어리석어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천박한 이들이라 휩쓸려가기 좋아한다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요, 혹은 영향력이 있는 강연자의 말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제스처를 취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듣기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 발생하는 반향을, 여론이라고들 합니다. 현대 정치를 구성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요소이지요. 공동체와 여론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이것들은 정치적 힘—헤게모니, 패러다임, 시대적 사명, 상식이라 불리 우는 것들—을 구성하지요.
그렇지만 이런 여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집단의 판단력이 제대로 작동되었다고 할 수 있나요? 개개인의 결정권이, 정말 유효하게 쓰였나요? 다수의 안에서 만들어진 역학관계에 의해서, 소수의 목소리는 사라지거나 왜곡되고, 공론화된 상황에서 한 개인의 부정의不正義한 언어가, 공공연한 사실이나 진실이 되어, 전체에게 일반적인 언어로 적용되기도 합니다. ……
다수의 정치가 정말 정당한 것일까요? 전체 안에서 무한한 소수나 개인—개인 안에서도 생성되는 특이성들—이 사라진 상황, 상상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군요. 컴퍼니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그 대가로, 컴퍼니에 대한, 즉 듣는 이들 집단에 대한 성찰을 해야 한다고 보고, 또 하고 있는지 묻고 싶군요. 리스닝 컴퍼니는, 타인과 함께 듣기를 실행하면서, 공통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까? ……
……홈리스 마인드
……목소리들은 머물 곳 없이 떠돕니다. 쓰여지지 않는 긴장 상태이며, 임시적이고, 비결정 되어있고, 가능성으로 가득한, 상상의 형태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가운데, 중심, 중앙, 여기서도 저기에서도 중간인 지점에서 살고 있는 한, 그러한 목소리들을 듣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중간에서 치우쳐서, 편향되어, 비대칭으로, 귀를 기울여,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듣기의 감성은 엄밀하고 단호합니다, 고집스럽게, 끝까지, 집이나 소속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비어있는 순간이 만들어내는 듣기의 운동성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지위를 박탈당하거나 추방당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도 있을 수 있는, 그 누구라도 스스로 칭할 수 있는, 그런 개념의 난민들의 사랑이 이런 것이 아닐까요? ……무한한 것들을 영원하게 만드는 것,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영원한 것을 찾고자 하는 구석진 작은 마음으로, 단호하게 외칩니다, 나는 아닙니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
(리스닝 컴퍼니 2차 개정 약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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